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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_일상

소음이 예쁘게 만드는 소리로 변화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by 겸지제 2021. 9. 14.

얼마전 5살 아들이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소음을 듣고 예쁘게 만드는 소리라고 했다. 리모델링 공사중이어서 2주정도 소음이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누구나 소음에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는 없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다. 그와 반대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스트레스가 되어 심하게 분노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아들이 대번에 "예쁘게 만드는 소리"라고 했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약 1년 전에 썼던 소음에 관한 글이 떠올랐다. 나름 나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쓴 것인데 1년이 지난 현재 나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때 쓴 글을 바로 페이스북에 올려볼까 생각하다 뭔가 자신이 없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올리겠다 생각하고 보관만 해두었다. 그때는 대전이었고 지금은 울산이지만 여전히 내가 사는 곳은 공사로 인해 매일 아침 일하는 자동차 소리로 소음을 만끽하고 있다. 그리고 윗층의 층간 소음은 새벽 3시가 넘어서도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으니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세상의 삶이 버겁다는 생각까지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나를 돌아보면 그 소음의 유발자가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소음에 더욱 의연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제 1년 전에 썼던 그 글을 올려본다. 

 

 

아래글의 시간 배경은 1년 전입니다. 

 

이제 대전에서 살게 된지도 3년째가 되었고, 3개월이 지나면 3년을 꽉 채우게 된다. 대전에 살면서 좋은 점들도 있었지만, 역시나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내 스스로 어렵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대전에 와서 힘들었던 것, 지금도 나를 힘들게 하는 한 가지 사실은 소음이다. 개인적으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리에 민감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조금이라도 시끄럽다고 여겨지는 작은 소리조차 용납하지 못하며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면의 싸움을 하게 된다. 심지어 도서관에서 누군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에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대전에 이사해 처음 거주했던 곳에서 비교적 좁은 길을 두고 맞은편에는 작은 밭이 있었다. 70세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꾸는 밭이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오전 6시쯤 되면 어김없이 경운기에 아주 큰 물통을 싣고와서 통속의 물을 밭에 뿌리기 위해 경운기를 켜놓은 상태에서 펌프질 작업을 하셨다. 경운기 소리는 거의 한 시간 동안 우렁차면서도 힘차게 내 귀를 자극시켰다. 아니 내 귀가 아닌 마음에 망치질을 하는 것같은 기분이었다. 한겨울과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이 일을 경험했다. 나는 그가 경작물에 물을 주는 방식이 다른 사람의 쉴 권리를 빼앗는 행위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여겼다. 그 소음으로 힘들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그저 자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 외의 시간에는 소음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특히 밤에는 매우 고요했다. 그것으로 위안 삼았다.

 

1년을 그곳에서 보내고 다른 집으로 이사했다. 지금 사는 집은 2층이고, 1층은 편의점이 있다. 이사할 때만 해도 1층은 식당이었다. 그런데 이사한지 2개월이 지나니 편의점이 들어섰다. 집 입구쪽으로 왕복 2차선 도로가 있고 맞은편에 또 다른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 하나 정도면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집계약을 완료하자마자 집주인은 1층에 편의점이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난 소음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래도 설마 했지만 그 소음은 현실이 되어 나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사람들은 시간과 상관없이 웃고 떠들었다. 어떤 이는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처음엔 내려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했지만, 오는 사람들이 매번 다르고 편의점에서 자리를 치우지 않는 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앉게 되니 매번 부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도 이기적일까를 생각하며 분노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물론 매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원룸들이 하나씩 새 건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의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한 건물이 그렇게 바뀌는 중에 또 다른 건물이 부숴지고 세워지고, 다 끝났다 싶을 때, 곧 또 다른 공사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공사중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교회사역을 쉬고 있고,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려고 집에 있지만, 이 소음들은 나를 괴롭게 한다.

 

올해 3월까지 배송일을 했었다. 택배일이었고, 그 사이에 3개월간 문구점 배송일도 했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지 도로와 지하차도 공사중인 곳이 많았다.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이 한참 동안 보이지 않을 때도 많았다. 심지어 일했던 문구점 앞 도로에도 공사중일 때가 꽤 있었다. 그때 나는 너무 괴로웠다. 주차문제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소음에 괴로웠다. 일하는 곳도 소음, 집에서도 소음에 괴로움이 날로 더해졌다.

이런 와중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어린이집 앞 도로는 수도관 관련 공사가 한창이었다. 역시나 시끄러웠고 그로 인해 짜증이 일어났다. 조용히 산책하듯 걷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순간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소음. 내가 이렇게 소음에 힘들어하는데, 과연 나로부터는 소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예전에 한창 출석하던 교회에서 공사중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게 세워지지 않았기에 여전히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 속엔 나는 여전히 공사중이니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자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공사중일 때는 반드시 소음이 발생한다. 때론 심하게 먼지가 일어나게 되고 그 먼지는 공사중인 그 지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이동하여 누군가 그 먼지를 마시게 된다. 소음도 그렇다. 소음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어디론가 번지게 된다. 내가 여전히 공사중이라는 나에게도 소음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누군가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나오는 소음으로 인해 힘들어 했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보고 경험하고 소음에 피해를 보는 아내에게 더욱 그러했다.

 

어느 아동심리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때론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 그는 아이들이 해달라는 것을 해주지만 계속해서 울면서 소리치듯 말하는 모습에 부모들이 지치기 마련인데, 그 모습은 결국 미성숙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가 나에게 말하는듯했다. 내가 내 아이에게, 내 아내에게 소리치며 말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여전히 바르게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미성숙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감정에 나를 맡기며 말이다. 아이들은 관심과 사랑을 원한다. 그 원함을 잘 표현하지 못하여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올해 42세인 나는 여전히 미성숙한 어린아이와 같이 관심과 사랑을 요구한다.

 

2017년도부터 선교사 자녀를 위한 대안학교인 세종글로벌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 교장 선생님에게 했던 나의 무례함은 미성숙의 극치였다. 천안에서 대전으로 학교가 옮겨지고 첫 1년을 보내면서도 나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뿜어져 나오는 소음은 여전했다. 대전에서는 천안에서와 다른 교장 선생님이었데, 마찰은 여전했다. 그땐 그분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의 미성숙함에 나오는 소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분은 그때 얼마나 답답하셨을까를 생각한다.

 

앞선 상황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여러 교회에서의 사역 중에도 나는 그러했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성숙해져야 하는 존재로 서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지만, 이제는 그 소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해서는 안되겠다. 이제는 나에게 방음처리를 해야할 것 같다. 성숙의 과정에서 소음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소음이 조금이라도 작아지도록 방음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방음은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적절한 표현이다. 그것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나와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몸은 어른이 되어 불혹을 넘겼지만 불혹에 걸맞게 성숙함으로 성장되어지기를,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해본다.